[이민선의 '편지']​10차선 도로 위를 나뒹구는 사과...난감하네

정은아 | 입력 : 2022/03/27 [19:42]

▲ 이민선 <오마이뉴스> 기자     

 

왕복 10차선 넓디넓은 도로 위를 빨간 사과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사과를 잔뜩 실은 화물차 짐칸이 반쯤 비어 있었다. 비상 깜빡이도 켜지 않았고, 운전자 모습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지만 않았다면,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하는 경적이 없었다면, 운전자에게 심각한 상황을 알린 뒤 사과라도 몇 개 주워 주고 싶었지만. 바쁜 출근길 도로 사정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굳이 내가 알리지 않아도 그 트럭 운전사는 자신이 처한 난감한 상황을 곧 알아차릴 것이다. 불안하고 긴장된 얼굴로 차에서 내릴 것이고, 아마도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세상살이에 서툰 사람이라면,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 한복판에서 사과를 허겁지겁 쓸어 담는 위험찬만한 '곡예'를 선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이렇듯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나 역시 수도 없이 이와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려 허둥댄 기억이 있다.

 

​같은 직종 선후배들과 기분 좋은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내 고물차 뒷좌석에는 하늘 같은 선배 두 분이 자리를 잡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늦가을 밤, 인적도 뜸한 한적한 도로였다.

 

​‘툭’ 잘 달리던 차 시동이 갑자기 꺼졌다. 십여 차례나 다시 시동을 걸어 봤지만 먹통이었다. 급히 견인차를 불렀지만, 워낙 한적한 곳이라 40여분이나 지나서야 도착했다.

 

​건장한 체격에 우락부락한 인상의 견인차 기사가 “렉카 부르셨어요”하고 말을 건넸다.

 

​“운전자만, 제 옆자리에 타세요.”

“그럼, 저 두 분은?”

“알아서 가셔아죠?”

 

​이 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단속 걸리면 벌금 300만 원 대신 내 주실래요?”

 

이 한 마디로 불편한 상황이 정리됐다. 하늘 같은 두 선배는 “알아서 집에 갈테니” 어서 가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우락부락한 인상의 그 기사 옆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빗속을 터덜터덜 걷는 두 선배를 차창 너머로 보면서 느꼈던 그 미안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뒤 한참 동안 두 선배한테 “어떻게 집에 가셨느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한 선배한테 “참,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하고 묻자 “말도 마, 그 빗속을 1시간 정도 걸어서 시내까지 갔고, 겨우 그곳에서 택시를 잡았어”라고 추억담 소개하듯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 일을 겪은 직후 난 10년 넘게 탄 애마를 미련 없이 팔고, 당분간은 길거리에서 퍼지지 않을 것 같은 그래도 쌩쌩해 보이는 중고차를 구입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것이다.

 

​사실 난처한 상황을 겪기 전 몇 차례나 자동차가 경고를 보냈었다. 끼룩끼룩 소리를 내다가 툭 하고 시동이 꺼지고...하지만 난 그 경고를 무시한 채 계속 자동차를 혹사시켰다. 그러다가 그 낭패를 당했으니,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다.

 

어쩌면 사과를 도로 위에 쏟아 버린 그 트럭 운전사도 나처럼 경고를 이미 받았을지 모른다. 누군가 사과 상자를 조인 밧줄이 너머 느슨하다 충고 했을 수도 있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과 세월호 참사, 최근 벌어진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사고 역시 사고가 나기 전 여러 차례 전조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방치하다가 결국 대형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경고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내 몸이 ‘이제 곧 아플 것같다’는 경고를 보낼 수도 있고, 자동차가 ‘끼룩’ 거리며 고장 날 것 같다는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자연도 미세먼지, 기후 온난화 같은 무서운 경고를 보낸다.

 

​이런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이성은 ‘무시하면 안 돼’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게으름 나태함 안일함 같은 본성은 ‘적당히 무시하며 사는 게 편하다’고 귓속말을 한다.

 

천성이 게으르다보니 가끔은 귓속말에 혹하면서 더러는 이성의 외침에 긴장하면서 난 하루하루를 살아 낸다. 그래도 자동차 점검만은 습관처럼 꼼꼼하게 하는 편이다. 미안하고 민망하고 난처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내 몸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 있어서 그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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