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 있는 이야기를 허물없이 주고받는 친구한테 “기레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상처를 받고는 했다. 뼈 없는 말임을 알면서도, 그래도 속이 쓰렸다. 그때마다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를 썼다. 농담도 못 받아주는 ‘속 좁은 놈’이란 사실만은 들키기 싫어서다.
요즘은 그 친구도 시들해졌는지 그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간혹 들어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 만성이 된 탓이기도 하고, 나를 ‘기레기’라 생각했으면 친구인 그가 절대로 ‘기레기’란 말을 입에 담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기레기’논란은 한국언론이 처해 있는 현신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심각한 일이다. 한국의 기자들은 어째서 ’기레기‘로 불리게 됐을까?
기자+쓰레기를 합성한 ‘기레기’ 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언론 신뢰성 위기’다. 사실과 다른 기사, 또는 왜곡·편파보도에 대한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된 일이다.
하지만 기자를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기레기’가 등장한 것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전 국민 입에 오르내린 것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부터다. 그만큼 그릇된 보도를 많이 쏟아냈기 때문인데, 대표적인 게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다. 이 오보로 인해 국민은 혼란에 빠졌고 구조 활동에 혼선이 빚어졌다. 특히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에 구조 활동을 지연시킨 것은 뼈아픈 일이다.
오보의 원인은 정부 브리핑을 확인도 없이 받아썼기 때문인데, 어이없게도 최초 오보를 낸 게 공영방송 MBC(4월 16일 11시 1분)였다. 그 오보를 YTN과 채널A가 각각 오전 11시 3분, 뉴스Y와 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이 오전 11시 6분에 이어 받았다.
이는 속보 경쟁이 낸 ‘보도 참사’였는데, 이 사건은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후 언론이 낸 최대 오보로 꼽혔다. 특히 MBC는, 목포 MBC 기자들이 현장 취재를 근거로 '학생 전원 구조' 보도가 오보일 수 있다고 알렸음에도, 데스크에서 이런 보고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받았다.
왜곡·편파보도 또한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린 주범이다. 그 범위는 넓다.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꾸민 경우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을 그릇되게 과장한 경우’, ‘전체 사실 중 일부분만을 부각시킨 경우’, ‘주장이나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을 보도하면서 한쪽 주장만을 전달한 경우’가 모두 왜곡·편파보도다.
왜곡·편파 보도가 나오는 이유는 기자의 실수, 무지, 불성실, 고의 등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고의다. 그 까닭은 취재원에 대한 호의나 반감 또는 적대감. 경제(판매부수 또는 클릭 수) 문제, 기자의 가치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살펴본 대로 기자를 ‘기자+쓰레기’로 만든 요인은 오보, 왜곡·편파 보도 등 여러 가지다. 기자의 역량과 가치관 같은 언론사 내부 요인과 우리 사회 정치와 경제 상황과 같은 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요즘 들어 중요해 진 게 경제, 즉 언론의 상업성 문제다. 광고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면서 적은 수의 저널리스트가 더욱 많은 부분을 커버하는 게 우리 언론 현실이다. 취재 현장에서는 손이 달린다고 아우성을 친지 오래지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이 아닌 대다수 언론이 직면한 현실이라는 게, 진짜 큰 문제다.
적은 인원으로 속보·특종 경쟁을 벌이다 보니 사실 확인을 게을리해 오보를 내게 된다. 기업, 정부, 공공기관 등 광고주 눈치를 보다 보니 특정 세력을 편들게 돼 왜곡·편파보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지금으로서는 기자 개개인이나 언론사에서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처럼, 어렵지만 이것이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한 첩경일 수 있다.
기자는, 내가 쓰는 기사가 공익적인 가치가 있는지, 사실에 부합하는지, 균형 감각을 잃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해 보아야 한다. 언론사는 경영이 편집을 간섭 못 하게 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언론의 비판적 기능을 높이기 위한 ‘탐사 저널리즘’ 등에 대한 공공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진다면 언론의 신뢰 위기인 ‘기레기 논란’을 뛰어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민선 <오마이뉴스> 기자 <저작권자 ⓒ 경기뉴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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